신약성서는 1세기 지중해 지역에서 형성되었다. 당연히 그레꼬-로마 세계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 안에서 기독교보다 훨씬 이전부터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으며 로마와도 관계했던 유대교와도 매우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들과의 관련이 친목, 긴장, 혹은 반목 그 어떤 것이든지 분명한 것은 신약성서의 배경이 단순하지가 않고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듯 신약성서의 배경이 되는 헬레니즘, 로마제국, 유대교가 이들끼리 서로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엄격한 의미에서 그들만의 독자적 사회, 독자적 문화는 사실상 존재한 적이 없다. 초기 기독교가 확실히 자리를 잡고 성서가 확립된 후에 기독교와 성서는 자체로써 하나의 독자적 문화가 되어 중세 유럽의 사회와 문화를 형성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런 독자적 문화로 자리 잡기 까지 신약성서(와 기독교)는 그레꼬-로마와 유대교의 다중적 배경 하에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서를 대할 때, 아무런 배경사적 전제 없이 접근하는 것은 매우 무모한 일이며, 재미도 없어 그렇게 성서를 읽으면 금방 졸음이 온다. 비록 성서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지만 성서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배경사를 연구하고 배경사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배경사에 대한 지식이 텍스트 메시지를 해석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석자의 해석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신약성서의 생성 시기를 전후해서 그 배경이 되는 그레꼬-로마 지역은 정치적으로 매우 긴박하고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알렉산더가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팔레스틴 지역 역시 서서히 헬라화 되어갔다. 이는 당연히 유대교 문화와 충돌을 일으키며 이 둘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지속되었다. 알렉산더가 너무 일찍 죽으면서 그의 제국이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던 위험이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그 제국의 넓이만큼이나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가 서로 통합되지 못하고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어간에 팔레스틴은 로마를 새로이 접하게 된다. 예수도 그리고 한 세대 후의 신약성서도 헬레니즘과 로마, 그리고 유대교라는 엄청난 배경과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다.
예수 시대의 갈릴리와 예루살렘은 무언가 변혁을 요청하는 듯한 분위기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는 빈부의 격차가 심각했고, 사회적으로는 이들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으며, 종교적으로는 이미 높은 신분의 위치에 있었던 종교지도자들이 때때로 로마와 정치적으로 결탁하기도 하고, 때로는 엄격한 그들만의 종교적 실천으로 일반 민중들에게는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일례로 이들의 종교 행위는 일반인들에게 적지 않은 위화감을 조성했다(마 6:1-18).
예수 당시의 이런 배경들은 예수 사역의 특성과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본서와는 좀 상관없는 이야기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상황에 맞추어 예수가 정치적으로는 민족의 해방자요, 사회적으로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가요, 여성해방론자, 심지어는 뛰어난 경영자로 보는 것은 예수에 대한 이해가 많이 빗나간 것이다. 이것이 소위 예수 운동(Jesus Movement), 혹은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라 불리어지는, 미국에서 행해지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에 대한 새로운 연구이다. 이는 다만 지극히 미국적인 실용주의적 발상일 뿐 실제로 예수는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마다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슈퍼맨이 아니다. 물론 예수를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해석자의 관심이 반영된 해석일 뿐 이 모두를 “역사적”(historical) 예수의 모습으로 수용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며 더구나 복음서가 증언하려는 예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해아래 새 것이 없다 했는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류는 비슷한 환경 속에서 비슷한 문제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과 그때가 적어도 상황적으로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배경사 책치고는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에 신약 이해의 중요한 내용들이 빈틈없이 정리되어 있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본문을 어떤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가령, 바울이 그의 거처를 수시로 옮긴 것과 당시 지방의 법이 미치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어는 점과의 관계는 우리에게 많은 새로운 안목들을 제공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이렇게 당시 상황을 구성하는데 대부분 2차 자료(secondary sources)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자료 역시 2차 자료에서 제인용한 것들이 많다. 자료상 신빙성에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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